<농무> 개인 해설 노트

Ashley Euyoung Kim
4 min readApr 1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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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벽히 순서대로 서술되어 있지 않음.

본 시의 주제가 농무( — 농촌의 일을 끝내고, 노동에서 벗어나 삶의 활력을 돋구기 위해, 또 수확을 기리고 피로를 풀기 위해 농민들이 추고 즐기던 춤 — )임을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제목을 보면 쉬이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시 안의 요소들도 그것을 제시한다.

『농무』는 70년대 농촌을 배경으로 한다. 정치적으로는 불안정하고, 나라선 한창 경제를 발전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던 때이다. 농촌은 아마 근대화, 산업화에 밀리고 어려움을 겪었던 것 같다. 농민들에게는 암담한 현실이었을 테다. 기억에 의존하자면 그들은 땅을 팔고 더 황량한 들로 떠나거나, 도시 노동자로 전락했을지도 모른다. 자세한 연도나 사정은 제시되지 않아도 이러한 맥락을 가져다가 시 『농무』를 분석하면 한결 이해하기 쉬운 부분이 있다.

가령 시적 화자가 언급하는 농촌의 어려움이 그렇다. 시에서는 이런 언어와 목소리로 표현된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비룟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발버둥 친들 무엇하랴, 등.

(언급했던 역사적인 농촌의 배경, 현실과 일치하는 부분을 찾아볼 수 있는 대목들이다. 비룟값이 안 나온다는 건 벌이가 시원찮고, 그래서 어렵다는 의미.)

그래서인지 처음 이 시를 감상하였을 때에는 어쩐지 화자의 목소리에 악의가 그득그득 들어차 있다고 생각했다. 시에서 사용하는 단어 그대로 원통함이 느껴졌고, 악을 써서라도 어떤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욕구가 느껴졌다. 앞서 말했던 농사 생활은 화자와 주변 농민들에게 고뇌와 탄식을 안겨주는 요소다.

화자는 감정에 얼룩진 사람이다. “우리”라고 하는 것을 보면 농민이고, “분이 얼룩진”라고 칭하는 느낌으로는 여성이 아닐까 싶었다. 시도 화자의 정서와 맞추어 무척이나 사실적이고 직설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직설적인 언어 표현의 예시로는 위에서 든 말들을 꼽겠다.) “징이 울렸다” 는 청각적 심상도 돋보이고, 이어지는 “막이 내렸다”는 시각적 심상이 어우러짐으로써 장면을 쉽게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심상은 인상적으로 남아 시를 기억하기 쉽게 만들어줄 수도 있고, 시의 구성을 흥미진진하게 한다. 외에도 ‘처녀들이 킬킬댄다’등, 심상은 더 있다.) 또 “분이 얼룩진”하는 대목은 얼굴에 서린 것이 치밀어 오르는 화인지 얼굴 치장인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피폐한 농촌 생활에 자조적 한과 울분을 품은 화자의 태도가 내게는 다소 공격적으로 다가왔다. (배경음으로 함께했던 날카로운 현악기 소리도 그 한몫을 거들었다.) 화자는 주변의 모든 것들을 고깝게 보는 것 같았고, 꺽정이나 서림이 등 남에게 이름을 불러대도 종래에는 이러한 발버둥조차 소용이 없다는 둥 회의적인 의견을 취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마지막에는 이 모든 허탈함과 분노, 원한, 울분 등에서 자유로이 벗어나고 싶음인지 마지막에는 신명 나게 춤을 추었다. 그것이 바로 농무다. 농민들이 노동의 피로를 풀고 삶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 추는 춤을 화자는 추었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인 묘사로, 신명 난 고갯짓 뒤에는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울분이 존재하고 있다. 매일의 괴로움을 이러한 방식으로 덜어내는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화를 표출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갈 곳 잃은 감정을 승화시켜내는 예술가들의 방식이기도 하지만, 이는 동시에 몹시 서민적이다. 그래서인지 더 잘 다가온다. (언젠가 보았던 한국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시킨다.) 황폐해진 농촌의 가운데 오도카니 서서 괴로워하고, 이내 자조적으로 춤을 추는 화자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그리는 것 같다.

본 시에서 이러한 작가의 사상 변화는 공간의 이동과 동시에 왔다. 운동장, 소줏집, 장거리, 쇠전과 도수장 등. 이렇게 허탈해했다가도 울분을 토하고, 답답해하다가도 벌떡 일어나 신명 나게 춤을 추었다. 겉으로만 보면 미친 사람의 행태, 혹은 술로 고주망태가 되어버린 이의 행태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의 구조는 독자들로 하여금 화자의 감정 변화에 이입하게 해준다. 변화는 다소 급작스러워도 이해와 공감이 충분히 가능한 선상이고, 심리적인 흐름을 제공한다. 즉 주제를 형성하고 감각적인 인상을 주는 데에 효과적이라는 말이다.

시의 운율은 내재율이다. (아마도) 시인의 체험이나 감정을 기반으로 한 것 같은 이 시는, 실제 민요적인 리듬과 시어를 사용해 리듬감을 형성하는 부분이 있다. 어려운 말을 쓰지 않고 (물론 현대인들에게는 다른 의미로 어렵지만) 농민의 소탈함을 담았다.

마지막 문단 끝 두 줄에서는 끝 어미가 “불거나” “흔들거나” 로 통일되어 율동적인 운율을 형성하기도 하고,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누군가에게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듯 “~대는구나” “~무엇하랴” 등 진솔한 말 어미로도 친숙한 반복 감을 느끼게 한다. 즉 우리말에 내재한 운율을 잘 사용하고, 밀착하는 매력이 있는 시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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