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며 흐르는 것, 흐르며 빛나는 것.

Ashley Euyoung Kim
6 min readMar 2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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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2년전, 중학생 때 쓴 개인 수필 리메이크

외국인에게 소개하기 난감한 이름이란, 아마도 내 이름 같은 이름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유영, 한국 발음 그대로 영어로 읆으면 “너는 어려”와 정확히 같은 발음이다. You young. 물론 표기는 Eu이다. 하지만 이것도 곤란한 게, 그러면 읽는 이는 이 ‘유’자를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 몰라서 우왕좌왕하더라. 그러면 다시 한 번 친절하게 읊어주어야 한다. “발음은 You에요.”

내 이름은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다. 흐를 유 자에 빛날 영 자를 썼다. 사람은 지어준 이름대로 산다는 이야기만큼의 미신도 없다. 굳이 그렇다 한다면 아마 이름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제 이름대로 살아버린 이일 것이다. 난 한자는 잘 모른다. 동생에게는 재상 재 자를 줘놓고, 내 이름 석 자에는 재물과 권력이라는 말이 없다. 해석도 애매하기 짝이 없다. 흐르며 빛난다는 건지, 빛나며 흐른다는 건지… 대체 어느 쪽인가? 궁금하여 할아버지에게 물어보았을 때도 이름의 의미는 스스로 생각해야 하는 거라는 답변을 받았다. 시원시원하게 말해줄 줄 알았는데, 무협 영화의 스승이 제자에게 하는 듯한 답을 들어버려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그래서 아직도 모른다. 굳이 따지자면 8살 즈음에 한 추측만이 아직도 남아있다. 왜, 위인전을 보면 크게 될 인물은 빛나는 총기가 좔좔 흘렀다 하지 않는다. 그게 아닌가 싶었다.

성까지 파고들 것은 없다. 부모님은 두 분 다 김 씨 성이다. 겉보기는 김이고, 속뜻은 두 분 서로 다른 김이지만 그 내용까지는 모른다. 이런 말을 부모님께 드리면 내 무식함에 혀를 내두르실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학교에서 한자 수업을 듣는 것은 아니니, 학비를 축내는 짐승이 되지는 않아 다행이다. 일전에 그런 글을 보았다. 아버지의 성씨만을 따오는 문화에 반대하며 어머니와 아버지의 성을 둘 다 붙여 쓰는 성씨가 일부권에서 유행하는 모양이다. 멋지다고 생각하기는 하는데, 그러면 나는 김김유영이 된다. 이것만큼 웃긴 이름도 드물지 않을까.

누군가의 이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다. 내 이름도 이 정도가 다니까, 말 다했을까. 이건 그다지 자랑이라고 할 말은 아니지만, 사실 부모님이나 동생의 이름, 친구들의 이름에 대해서도 그다지 궁금해 한 적이 없다. 물어보고서도 금방 잊어먹고는 한다.

가끔 사람에게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이 참 낯설다. 의자는 의자라고 부르고, 돌은 돌이라 부르고, 하늘은 하늘이라 부르면서 사람은 이름을 부른다. 60억 명만큼 60억 개의 이름이 있다. 사람이 아니어도 이름이 붙여지는 것들은 사람들의 애완동물이나 연예인의 이름을 딴 도로명 정도다. 의자도 낮은 의자, 높은 의자, 비뚤어진 의자, 둥그런 의자 모두 그냥 의자다. 가끔 자기 의자에 ‘제임스’라고 이름 붙여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흔한 경우인지에 대해서는 굳이 첨언하지 않겠다. (제품명이 붙는 경우는 존재하지만.)

내게 사람이 의자만큼이나 다양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대답할 자신은 없다. 꽤나 인간 중심적이지만, 그 이름을 지어주는 게 결국에는 인간이니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인간 중심적이라는 게 어떤 의미로? 라고 묻는다면, 글쎄… 나는 꼭 이름이 말로 나오는 글자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생각한다. 개미는 더듬이에서 나오는 페로몬 물질을 맡아 개체끼리 대화한다. 어떠한 사물을 지칭할 때에는, 그것을 지칭하는 페로몬을 분비해서 알리는 것이다. 돌고래는 음파로 대화하고, 어떤 새를 파르르 떨어대는 몸짓이 수신호의 일종이다. … 세상에는 언어 개수만큼의 이름이 있을 것이다. 언어라는 말도 편향적이라면, 아마… 무언가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 가짓수 만큼일까.

뭐든 쉽게 질려버리는 사람 특성상, 오늘은 민하. 오늘은 재희. 하면서 날마다 이름을 바꿔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배우자는 둘을 맞을지언정 이름은 평생 하나로 살아간다. (대부분은.)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아마 이름은 특별하기 때문일 것이다. 바꾸어서는 안 될 가치로 취급되는 것이다. 평생을 함께하는 사람은 없어도 평생을 내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유영으로. 동생은 재연으로. 아빠는 종흔, 엄마는 다훤으로… 물론 개명하는 사람도 있겠고, 실제로도 극히 드문 건 아니지만 개명 역시 큰 의미를 가지는 편이다. 개명이란 말 그대로 자신의 본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꾸는 것이니까. 자기 한국어 이름이 싫어서 아예 영어 이름으로 개명한 사람도 봤고, 전 이름의 절묘한 발음으로 인해(감자라고) 놀림 받았던 것이 너무 싫어 개명한 친구도 보았다. 난 내 이름을 개명할 생각은 없다.

놀랍게도, 나는 내 이름이 좋다. 이름이 드문 것도 좋고 내 가족이 지어준 것도 좋다. 나는 할아버지가 내 이름을 지어준 것도 좋고, 누가 내 이름을 까먹지 않는 것도 좋다. 이것이 놀라운 이유는 나라는 이가 욕심이 많은 변덕쟁이이기 때문이다. 변덕은 죽 끓을 듯 할지언정, 이름을 바꾸고 싶었던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이다. 어색하게 느ㅕ졌던 적은 있어도(이따금 유영아! 하고 불러도 마치 다른이를 부르는 듯해서 대답하기 힘들었다. 내가 ‘유영’이라는 사실이 못새 어색했던 까닭이다.) 유영자에 ㅇ 이 세 번 들어간 발음도, 아이디로 쓸 때 U0(유 자, 영 자)이라 재치있게 영, 한, 숫자를 조합할 수 있다는 것도 좋다. 한자로는 빛날 자가 있어서 좋고, 흐르는 자도 좋다. 빛남은 내게는 목표이자 동경하는 자다. 나는 항상 빛나고 싶어한다. 사람이 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만은 그 열망이 좀 더 강할 것이다. 그런 내게 흐름은 부족하고 필요한 자다. 나는 잔잔할 필요도, 조용할 필요도, 순리는 무질서든 질서든 따라갈 가치도 필요로 한다. 흘러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잘못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항상 어디론 가에 휩쓸리고 있다. 그것을 따라 자연스레 따라 따라 흘러가지 못하고 팔을 벌려 막아내느라 어딘가 헐어버린다. 그러니 흐름인 것이다. …나는 어쩌면 합친 두 글자보다는 따로따로 본 유 와 영을 좋아할지도 모른다. 이렇듯 각각의 가치를 보는 게 나라는 인간에게 끼워 맞추기 더 편리하고 즐거운 까닭이다. 비록 할아버지께서는 내게 두 글자의 이름을 이어 붙여서, 내게 흐르며 빛날 것인지 빛나며 흐를 것인지를 물었지만. 또 아마 나는 그 이름의 뜻을 찾을 때까지 개명은 하지 않겠지만(그리고 이후로도 하지 않을 것 같지만). 이름의 의미를 찾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을 생각은 없지만, 웃기고, 높고 낮으며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내가 인생을 제대로 살았다면 어느 순간에는 그 의미를 아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아마 종래에는 이런 결론에 다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 둘 다거나 둘 다 아니거나. 삶의 우여곡절을 따라 어떨 때에는 전자로, 어떨 때에는 후자로 해석하고. 또는 그것을 전면 부정하게 될 것이다. 둘 다 나라는 가치에 어울리지 않거나, 과분했거나, 이미 긍정했거나, … … … 그런 것을 깨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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